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나라 덴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무로마치 막부]] 치하에서[* 사실 [[전국시대(일본)|센고쿠 시대]] 초기에 일어난 '''메이오 정변''' 이후에는 [[무로마치 막부]]도 이미 힘을 거의 잃어버려서 사실상 끝장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.] 황실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즉위식을 치를 돈도 없어서 유력한 센고쿠 [[다이묘]]인 사가미국의 [[후호조씨]](相模後北条氏)나 스오국의 [[오우치]]씨(周防大內氏), 스루가국의 이마가와씨(駿河今川氏) 등의 가문으로부터 헌금을 받아서 즉위한 지 10년 만에야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었으며, [[천황]] 자신도 자신의 어필(御筆)을 팔아서 황실 수입에 보탰다고 한다.[* [[한국계 미국인]] 작가인 폴 임이 저술한 잡학사전인 《책 속의 책》에 의하면, [[나무젓가락]] 만드는 부업도 했다고 한다.] 또 [[궁녀]]들이 매춘을 했으며[* 전근대 일본에서는 [[궁녀]]들의 대부분이 '''[[귀족]] 출신'''이었다. 높아봐야 양인, 보통은 천민들을 궁녀로 선발했던 [[조선]]과는 전혀 달랐다.], 동네 아이들이 천황을 무시하고 마구 돌을 던져, [[동네북|그 돌에 맞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.]] 비단 고나라 덴노 뿐만 아니라, [[전국시대(일본)|센고쿠 시대]]의 [[천황]]이나 [[공가]](구게) 등 귀족들의 삶은 이런 식이었다. 그나마 공가 출신자들은 알아서 장사에 뛰어들거나, [[사무라이]]의 가신으로 들어가서 활약한다든지, 아니면 사무라이들에게 다도나, 시문, 예법 등을 가르치는, 현대로 치면 문화센터 강사로 활약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다. 심지어 [[이치조]] 가문의 방계인 [[토사 번|토사]] 이치조[* [[센고쿠 시대]] [[다이묘]]들 중 하나인 [[이치죠 카네사다]]의 출신 가문이다.] 같은 일부 [[공가]]는 이렇게 재미를 보고는 아예 직접 칼을 잡고 [[사무라이]]가 되어 >"나는 [[다이묘]]요." 라고 자칭한 자도 있었다고 한다(...)[* 선술한 [[토사 번|토사]] [[이치조]] 가문은 토사 일대를 영지로 가지고 있어서 [[다이묘]]를 자칭할 기반이 있었고, [[오다 노부나가]]의 출신 가문인 오다 가문은 본래 [[신토]]의 신관 가문 출신이라서 기반으로 삼을 막대한 부와 권위가 있었다.]. 하지만, 황족들과 [[고셋케]](오섭가) 구성원들은 체면상 그럴 수 없어서 나무젓가락을 만들고, 서예를 해서 팔아다가 생계를 잇기도 했으며, 돈이 없어서 밥을 굶거나 다 떨어진 옷을 기워서 입기도 했다. [[이원복]] 교수의 《[[먼나라 이웃나라]]》 <일본-역사>편에서는 위의 불우한 황실의 모습을 [[에도 막부]]의 일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론 '''절대 아니다.''' 오히려 에도 막부 시기에는 황족과 공경들이 도쿠가와 [[쇼군]] 가문과 같은 고위 [[사무라이]]들과 사돈을 맺고 영지를 제공받는 등으로 상당한 권세를 누렸기 때문에 절대로 이렇게 불우하게 살지 않았다. 만약에 에도 막부 시기에 센고쿠 시대 마냥 애들이 지나가는 천황에게 돌을 던지며 무시했다면 [[끔살|그 아이들의 부모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]][* [[에도 막부]]의 역대 [[쇼군]]들 중에서 최고의 [[성군]]으로 꼽히는 [[도쿠가와 요시무네]]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[[일본]]의 국민 드라마인 <[[망나니 장군]]>에서는 메인 빌런이 [[공가]] 출신의 조정 대신이라는 설정이 있는데, 창작물의 사례이긴 하나 실제 전근대시대 일본 사회에서의 공가의 위상도 드라마에서처럼 쇼군이나 막부의 고위 관료들에게 이따금씩 한 마디할 정도는 되었다는 뜻이다.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